이동수단과 통신의 발달로 국가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가 그 첨병이다. 국산품 애용은 이미 흘러간 노래다. 소비자들은 제품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오직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는 제품만이 살아남는 것이 현실이다. 소비자들의 신뢰는 곧 브랜드의 힘으로 연결된다. 강력한 브랜드의 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한국 기업들의 브랜드 파워, 어디까지 왔는지 정리해본다. [편집자]
중국 베이징에 사는 허밍린(何明琳·가명)씨는 현대자동차 '밍투'를 타고 출근길에 나선다.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아이들 간식으로는 초코파이를 주로 산다. 서울에 사는 전업주부 정성희씨의 선택기준은 '1등'이다. 집안의 가전부터 소소한 먹거리까지 1등 브랜드의 제품만을 고집한다.
이들 모두 특정국가의 제품을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들은 브랜드를 보고, 제품을 선택한다. 알려진 브랜드를 가진 제품이 품질에서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번 굳어진 이런 생각이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처럼 우리는 지금 '브랜드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는 사실상 신뢰와 동일한 단어가 됐다. 브랜드의 힘이 커진다는 것이 곧 기업의 성장을 의미하는 시대다. 삼성과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의 성장도 그들의 브랜드 파워와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 왜 브랜드인가
브랜드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경쟁자와 차별화시키고, 소비자가 그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지각, 느낌, 경험 및 신뢰를 통해 형성되는 통합적 감정'이라고 정의된다.
단순히 제품의 이름을 잘 만들거나 로고를 멋지게 만들었다고 해서 브랜드의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제품의 기획부터 연구, 생산, 마케팅, 애프터서비스 등 모든 단계가 집약된 것이 바로 브랜드다. 그런 브랜드만이 힘을 갖게 되고, 결국 기업의 성장과 연결된다.
브랜드는 반드시 대기업이라고 해서 강한 것은 아니다. 삼성과 현대차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누구나 아는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특정지역 공략에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 초코파이나 락앤락이 중국시장에서 거두고 있는 성과에서 이같은 점을 찾아볼 수 있다.
락앤락은 중국 주방밀폐용기 분야에서 3년 연속 1등 브랜드를 유지했다. 오리온 역시 초코파이로 3년째 1등 브랜드를 차지했다. 지난 2012년에는 중국에서만 매출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락앤락의 중국 이름은 ‘라꾸라꾸(乐扣乐扣)’로 ‘즐겁게 덮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리온 역시 ‘하오리요우(好丽友)’로 ‘좋은 벗’이란 의미의 브랜드를 사용한다.
LG경제연구원은 락앤락과 오리온이 중국에서 성공한 이유중 하나로 이같은 '브랜드 네이밍 전략(Naming strategy)'을 꼽았다. 물론 이같은 성공의 배경에는 앞서 언급한 철저한 시장조사와 분석이 자리잡고 있다.
▲ 인터브랜드 2013 글로벌 100대 브랜드 조사 결과. 삼성은 전년보다 한단계 상승한 8위를 기록했다. |
◇ 군계일학 '삼성'..쑥쑥 크는 '현대차'
삼성과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특히 삼성의 브랜드 파워는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돋보이는 수준까지 상승하고 있다.
브랜드컨설팅 기관인 인터브랜드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396억1000만달러로 세계 8위를 기록했다. 전년의 9위에서 한단계 더 상승했다. 애플을 제치고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등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성과가 반영된 결과다.
브랜드 파워와 기업의 성장이 같이 이뤄진다는 점은 삼성의 경우에서 잘 나타난다. 브랜드 가치가 한단계 더 상승한 지난해 삼성전자 스마트폰 부문의 영업이익은 25조원에 육박했다.
과거 삼성 휴대폰의 점유율이 10% 초중반에 머물던 당시 삼성 브랜드 가치는 160억~170억 달러선에 머물렀다. 글로벌 기업중 약 20위권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점유율이 20%를 넘은 2010년 브랜드 가치는 194억달러까지 늘었다. 점유율 25%를 돌파한 지난 2012년에는 328억달러까지 급증했다. 브랜드 가치순위도 9위까지 높아졌다. 스마트폰을 앞세운 삼성 브랜드 파워가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삼성과 정확히 대비되는 기업이 바로 노키아다. 과거 전세계 휴대폰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노키아의 지난해 순위는 57위에 불과했다. 전년의 19위에서 무려 40계단 가까이 급락했다. 1년만에 브랜드 가치의 65%가 줄었다는 것이 인터브랜드의 분석이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현대차와 기아차의 브랜드 파워도 커지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브랜드 가치는 90억4000만 달러로 43위를 기록했다. 삼성에 비해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1년만에 10계단을 뛰며 처음으로 50위권 안에 진입했다. 현대차는 자동차기업중 7번째에 위치하며 아우디와 포르쉐, 닛산보다 브랜드 가치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기아차도 전년의 87위에서 83위로 올라갔다. 기아차의 브랜드 가치는 47억800만 달러로 평가됐다.
◇ '우리도 있다' 한국의 50대 브랜드
세계 100대 기업만을 발표하는 인터브랜드의 조사결과 지금은 삼성과 현대차, 기아차 등 3개 회사만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매출을 기준으로 하는 포춘 500대 기업에는 이들 외에도 SK와 LG전자, 포스코, GS 등 13개의 한국기업이 진입해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는 후보군들이 있다. 이들은 인터브랜드가 지난 2월 발표한 한국의 50대 브랜드(관련 표 참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터브랜드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와 현대차, 기아차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는 회사는 SK텔레콤으로 나타났다. 포스코와 삼성생명, LG전자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NHN이 8위에 위치해 눈길을 끌었다. 신뢰를 먹고 사는 금융기관보다 인터넷 기업인 NHN이 높은 자리에 위치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국내 브랜드 상위권에는 이들에 이어 KB국민은행과 신한카드, KT,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현대중공업, 삼성화재, 현대모비스, LG화학 등이 이름을 올렸다. 특히 유통기업들의 성장세가 눈에 띄었다. 총 13개 브랜드가 이름을 올린 유통업계에서는 롯데쇼핑(18위)이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으며 이마트(29위) 현대백화점(30위) CJ오쇼핑(34위) 등의 순이었다.
그레험 헤일즈 인터브랜드 CMO는 "한국기업들이 단순히 광고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며 "보다 위대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선 광고와 마케팅 등 외부적인 활동뿐 아니라 조직 내부적으로 브랜드에 대한 이해와 활동을 강화하는 내재화(Brand Internalization)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