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급증하는 전기차, 폐배터리 어쩌나
전기차 뒤편에는 쓰레기가 쌓인다.
선진국들이 친환경 정책을 앞세워 전기차 시장을 키우고 있지만,
전기차가 쏟아내는 폐배터리가 오히려 환경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기차의 역설을 해결하려면 폐배터리를 재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는 이유다.
그러나 폐배터리 재활용도 과연 최선의 대안일까?
전기차는 핫하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환경 정책을 점점 강화하고, 완성차 업체들도 전기차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어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글로벌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순수 전기차) 판매량은 435만대로 전년보다 65% 했다. 오는 2030년 전기차 판매 규모는 5489만대에 달할 전망이다. 내연 기관차 판매량 대비 57% 수준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다.
전기차 시장 성장에 따라 폐배터리 방출량도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는 전세계 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가 2020년 111억달러(약 14조2600억원)에서 2030년 666억달러(약 85조5800억원)로 6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면 전기차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약 7%정부 '규제개선·지원을 통한 순환경제 활성화 방안’ 中
저감할 수 있다.
환경오염 그리고 인체 유해성
배터리 재활용은 전기차의 친환경성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러나 배터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해 내놓은 '어린이와 전자 폐기물 처리장'(Children and Digital Dumpsites)' 보고서에도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된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에 따르면 배터리에서 배출되는 독성 물질은 납, 카드뮴, 니켈, 리튬 등이 있다. 리튬은 폐, 니켈은 알레르기·간, 카드뮴은 암·신장·뼈, 납은 신경발달·신장·심혈관·생식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게 의 설명이다.
WHO는 "특정 물질의 노출은 즉각 어린이 건강과 발달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됐을 때 만성적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전기차의 경우 현재 전세계 자동차 판매량의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전기차와 같은 신생 전자제품에서 파생되는 전자 폐기물의 영향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배터리는 제조 과정에서 여러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데, 신체 접촉시 독성으로 인한 호흡곤란·심장마비를 일으키는 등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소 'CSIRO'
배터리 재활용,
과정도 산 넘어 산
폐배터리 재활용 과정을 봐도 환경오염 요인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처리에는 황산에 블랙매스*를 녹인 뒤 원재료 특성에 반응하는 다른 물질을 넣어 필요한 것만 걸러내는 습·건식 공정을 활용한다. 이때 환경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습식 공정을 거치면 액체 형태의 오염 물질이 나온다. 건식 공정도 고온 처리 과정에서 대기 오염을 유발한다.
국내 대기업·중소기업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런 후처리 공정을 포함한 공장을 건설하지 못하고 블랙매스만 생산한다고 밝히는 이유도 현지 환경 규제와 시민단체의 반대 때문이다. 전처리 공장을 지을 때도 규제 탓에 지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포스코, 성일하이텍이 이런 경험을 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든 환경적인 부분에서는 규제가 심하다. 국내도 그렇다. 다만 국내보다는 해외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여러 애로 사항이 있었다.정철원 성일하이텍 전무
해결책은 있을까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기업 '라이사이클'은 대안을 만들고 있다. 라이사이클은 오염물질 관리가 어려운 건식 공정은 피하고, 습식 공정을 사용하되 오염물 관리를 철저히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우리는 고온 처리(건식) 공정이 없기 때문에 대기오염 물질을 최소한으로 방출하고 있고, 향후에도 비가열 습식 공정을 적용할 것입니다. 모든 공정에서 사용한 물을 회수하고 다시 투입해 재활용하면서 수질 오염을 최소화할 계획입니다.팀 존스턴 라이사이클 회장
성일하이텍도 환경오염 가능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마련 중이다. 이 회사는 물리적 처리, 습·건식 공정을 모두 갖춘 곳이다. 성일하이텍 관계자는 "대기오염 물질, 폐수를 처리할 때 환경부 기준에 맞춰 배출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환경오염 요인을 관리하고 있다"며 "새만금 산업단지에 새로 짓고 있는 3공장에는 공정에서 나오는 폐수를 재사용하는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습식 공정에서 블랙매스를 녹일 때 사용하는 황산을 친환경 침출제로 바꾸는 방안은 여전히 고민이다. 성일하이텍 관계자는 "황산 대신 친환경 침출제를 써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우리도 이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친환경 침출제는 값이 비싸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수준이어서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배터리 재활용 산업이 친환경 정책이라는 방향성에 맞추려면 업계 스스로 환경오염 문제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친환경 공정을 추구하려면 관련 기술 개발과 함께 가격 경쟁력도 갖춰야 한다는 분석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관계자는 "습식 또는 건식 공정이 친환경적으로 완비된 공장에서 제대로 폐배터리를 처리해야 한다"며 "재활용 공정도 결국 환경을 얼마나 덜 파괴하는지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